손영미 대표님 생전 모습 (영상편집 : 미디어몽구)
고 김복동 할머니의 손영미 대표님 평 (영상제공 : 양징자 운영위원)

[고 손영미 대표님 약력]

손영미 ‘김복동의 희망’ 공동대표님은 1958년 경남 양산에서 나셨습니다.

부산에서 거주하시다 정대협이 할머니들의 쉼터 ‘우리집’에서 함께할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오셔서 2004년 5월부터 쉼터 실장님으로, 소장님으로 활동해오셨습니다.

황금주 할머니, 이옥금 할머니, 황순이 할머니, 최갑순 할머니, 손판임 할머니, 정OO 할머니, 이OO 할머니, 이순덕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와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손영미 대표님은 할머니들의 오랜 벗이었습니다.
손영미 대표님은 할머니들의 든든할 일꾼이었습니다.
그리고 손영미 대표님은 김복동 할머니의 찬란한 희망이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시며 김복동 할머니의 희망이 세상에 빛나도록 한생을 살아오신 손영미 대표님. 언제나 환한 미소로,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김복동 할머니가 가시는 길이라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걸어가신 손영미 대표님.

재일 조선학교 아이들을 위해 김복동 할머니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아 아이들에게 이어주던 분.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을 위해 김복동 할머니가 목소리를 내시면, 그 목소리를 받아 세상에 널리 알리신 분.

2020년 4월 2일 김복동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는 ‘김복동의 희망’ 공동대표로 취임하셨습니다.

그렇게 쉼터에서, ‘김복동의 희망’에서 영원히 함께할 것 같았던 손영미 대표님께서 2020년 6월 6일 다시 김복동 할머니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김복동의 희망’은 재일 조선학교 차별을 없애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과 평화의 세상을 만드는 희망을 만들어 가던 손영미 대표님의 뜻을 소중히 이어받겠습니다.

손영미 대표님, 사랑합니다.
김복동 할머니와 손잡고 내내 평안함 누리소서.

[일본 방청자 운영위원의 추모사]

사랑하는 손영미 대표님

김복동 할머니를 보내드렸을 때, 저 만큼 깊은 슬픔이 있었어도 아직 각오가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돌아가시어 이 슬픔과 절망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두 번 다시 미소 가득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슬픔에, 손영미 대표님을 거기까지 쫓아 보낸 모든 것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어찌할지 모르겠습니다.

손영미 대표님이 윤미향 전 대표와 할머니들과 함께 세계를 뛰어다니면서 개척해 오신 새로운 운동, 새로운 시대와 지평을 우리들은 한 점 흔들림없이 단단하게 믿고 앞으로 그 길을 가겠습니다.

먼저 가신 김복동 할머니의 손을 잡고, 우리들을 지켜봐주시요.
부디 남겨진 할머니와 윤미향 의원을 지키고 떠받쳐 주세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손영미 대표님
편히 잠드소서.

[일본 양징자 운영위원의 추모사]

손영미라고 하면 떠오르는 말.
청렴, 진심, 헌신.
그래서 참지 못했을 거에요.
비리, 부정, 의혹
그런 말들이.

평생 거리가 멀었던, 평생 들을 리가 없었던 그런 말들을 억울하게 들어야 했던 나날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제서야 그 심정을 헤아리게 된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원망스럽고 부끄럽습니다. 미안해요.

맨날 만나면 “선생님~”하던 님에게 불과 몇 년 전에 “언니라고 불러요”했더니, 그 후로는 만날 때마다, “언니”라고 불러주는 게 좋으면서도 아직은 좀 낯설었는데. 좀 더 “언니”소리에 익숙하게 몇 번 더, 아니 몇 십 번, 몇 백 번 더 불러줬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이렇게 가면 안 되지.
그런 소리 하면 안되나요? 여긴 그런 자리가 아닌가요?
그래도 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납득 못하고 있고, 아직은 보내지 못하고 있어요.
날아 가서 마지막 길 배웅할 수 있었다면 그래도 좀 나았을까요?
그 곳에 가지도 못하면서 원망만 하는 이 언니를 용서해줘요.

한국에 갈 때마다 쉼터에서 묵을 수 있게 배려해 줘서 고마워요.
아침마다 너무너무 맛있는 집밥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우리가 가려고 하는 정의로운 길, 끝까지 함께 해줘소 고마워요.

이렇게 고마운데, 고맙다는 말 제대로 못해 줘서 미안해요.
그 심정이 어떤지 헤아려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언제나 웃으면서 참는 모습 보고, 안심하고 있어서 미안해요.
멀리 일본 땅에서 아무것도 못해서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편히 쉬세요.

[김건영 운영위원의 추모사]

손영미 대표님을 추억하며

쉼터를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켜주셨던, 이순덕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께는 딸 같은 존재였던 손영미님께서 영면하셨습니다.

대표님의 헌신이 있었기에 평화의 우리집에 평화가 가득했고, 웃음과 에너지가 가득 찰 수 있었습니다. 또 ‘김복동의 희망’의 대표로서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라고 말씀하셨던 김복동 할머니의 뜻을 누구보다 따르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지난주 김복동의 희망 운영위원회 관련 문의를 드리면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힘없는 목소리를 그냥 지나쳤습니다. 통화중에 별 것 아닌데도 자꾸 저에게 죄송하다 하시는 말씀도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주말 들려온 소식에 저는 지난주 저의 무심함이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2층 김복동 할머니 방에 올라가 혼자 말씀을 하신다던 대표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하는 말동무가 되어드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종종 만나 뵐 때 마다 더 자주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표현해드리지 못했다는 것도 역시 너무 후회가 됩니다.

추모식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대표님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게시물들을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2020년 길원옥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2019년 길원옥 할머니 그리고 강북삼성병원, 2018년 2017년은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그리고 신촌세브란스병원, 강북삼성병원 이야기, 그리고 그 이전은 이순덕 할머니 이야기뿐입니다.

15년의 시간을 오로시 할머니들의 이야기만으로 채워오신 손영미 대표님,
헌신을 행복으로 생각하신 당신의 그 아름다운 마음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겠습니다.

이제는 그곳에서 그토록 보고 싶어 하셨던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손잡고, 고향 양산으로 그리고여기 저기로 놀러 다니시며 당신을 위한 행복도 찾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손영미 대표님. 고맙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