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김복동 희망학교 특강을 열었습니다.

오늘의 강연자 강종헌 선생님은 재일조선인 2세로 박정희 정권 하에서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13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2015년 마침내 무죄선고를 받으셨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계십니다. 강의에 앞서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를 입은 선생님의 동료가 오늘 무죄선고를 받으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한일관계가 살얼음 판에 서있는 요즈음, 친일과 반일 그리고 항일의 의미를 짚어보았는데 친일이란 식민지배, 즉 반민족 세력의 침략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친일을 말할 때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박정희입니다. 당시 연령제한으로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던 그는 혈서를 써서 입학 허가를 받아내 결국 일본군 장교가 되었지요. ‘대일본제국’의 시대가 바로 그의 시대였습니다.

이와 달리 정몽규, 윤동주, 손기정 등 일제에 저항했던 이들의 발걸음도 따라가 봤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탓에 우리가 익히 들어본 이름은 아니지만 항일투쟁의 선봉에 서서 목숨을 잃기까지 했던 얼굴들도 더듬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반아베를 부르짖고 있지만 식민과 분단의 역사에서 미국의 책임을 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전후 동아시아 냉전질서의 기본 골격이 되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회의에 정작 가장 큰 일본 침략의 피해국인 우리는 참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대일 전쟁배상 청구권 포기를 주도하고 종속적인 군사동맹 아래서 일본의 주권을 회복시킵니다. 일본의 전쟁 책임자들도 복권됩니다. 선생은 이렇듯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바탕이 되는 샌프란시스코체제 하에서 나온 것이 한일청구권 협정이라고 지적합니다. 우리의 해방을 도왔고 한국전쟁의 동맹으로 바라봐 온 미국은 실상 우리를 해방된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미군정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친일파를 등용했습니다. 한일‘위안부’ 합의도 65년 한일국교 정상화에서 맺어진 한일 간의 갑을관계와 미국이 주도하는 미-일-한의 위계구도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샌프란시스코체제의 핵심에 있는 미일안보조약은 미국이 일본에 계속 주둔할 수 있도록 만든 조약입니다. 이를 본받아 거의 비슷하게 맺어진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지요. 그리고 이 두가지 조약과 아주 흡사한 것이 바로 1910년 8월 22일 맺어진, 우리에게 국치로 기억되는 한일간 조약입니다. 그 1조는 바로 한국의 통치권을 일왕에게 영속적으로 넘긴다는 내용인데, 여기에는 우리가 자의로 주권을 넘겼다는 의미가 주입되어 있습니다. 선생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본질이 이와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도국이지만 실상 섬나라의 위치에 처해 있는 우리의 현실이 새삼 안타깝습니다. 남북정상이 손잡고 선 하나를 넘는 순간이 오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선생은 최근 남북관계가 다시 불신도 일고 있지만, 우리가 이뤘던 작은 통일들을 기억하면서 그 조각들을 이어 큰 통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북미의 만남은 극적이고 기대를 줬지만 미국의 입장은 여전히 강압적입니다. 한국 정부의 국방예산 50조는 북측 GDP의 1.5배에 달하는 상황입니다. 오래된 분단의 세월만큼이나 우리의 의식도 굳어있는지 모릅니다. 압도적 힘의 우위로 상대를 누르려는 것은 냉전시대의 인식이라 할 것입니다.

강종헌 선생의 강의는 외세의 입김이 여전히 거세지만, 남북 평화와 화해의 시대에 우리의 비판의식과 역할을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김복동의 희망 정기후원 신청하러 가기>> 클릭! https://www.kimbokdong.com/m/10 ※ 일시후원 / 국민은행 069101- 04- 224446 (김복동의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