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부터 거의 일주일 동안 1백만 원 혹은 3백만 원씩 여러 차례 총 1천5백만 원을 정의연과 김복동센터 후원통장에 입금을 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우윤정’ 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정의연과 김복동의 희망 두 단체가 한 공간 안에서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기에 이 소식을 상근활동가들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활동가들은 ‘어떤 사연이신데 이렇게 큰 돈을 기부하실까?’ ‘만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복동의 희망 사무실 전화로 3월 17일, 전화가 왔습니다. 윤미향 대표가 전화를 건네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고마움과 감동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전화를 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을 우선 전했습니다. 우윤정 님은 자신을 김복동 할머니를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대화중에 “목소리가 윤미향 대표님이시네요” 순간, 이 분은 우리 활동을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복동의 희망> 홈페이지를 통해 김복동 할머니가 오사카 조선학교를 방문한 것을 보게 되었어요. 윤미향 대표님, 저를 좀 만나주세요. 직접 만나서 후원금을 전달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여 3월 18일 수요일, 온라인수요시위를 진행한 후 3시경 사무실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김복동의 희망> 조정훈 사무처장은 오전에 사무실에 나와 다과 준비를 하고, 두근두근… 기부판도 만들고 감동감동…, 윤미향 대표와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 김복동의 희망 장상욱 공동대표, 사무처 활동가들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사무실 근처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한 후 바로 사무실로 달려와 기다렸습니다. 손영미 평화의우리집 소장도 황급히 쉼터에서 달려오셨습니다. 어떤 분이실까? 목소리를 들어보니 젊은 분이신 것 같은데 정말 어떤 삶의 사연, 역사를 갖고 계신 분이실까?
어김없이 3시경 연락이 왔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곳에 조정훈 사무처장이 달려나가 사무실로 모셔오고, 사무실에서 마주 앉았습니다. 앉자마자 5천만 원이 새겨진 현금수표를 건네십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희망대로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일에 써주세요.”
가슴이 벌렁거렸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나려 했습니다.
“우리 언니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언니는 참 똑똑한 사람이었어요. 만약 살아계셨더라면 쓰임을 참 많이 받았을거예요. 우리 언니 떠나 보내고, 언니가 살아생전 하고 싶었던 일을 이렇게 제가 대신 하게 되었습니다.” 언니의 유언을 스스로 집행하고 있다는 동생…
힘겨운 삶을 살아내고, 이제 꿈을 펼칠 수 있게 되었을 때 병을 갖게 된 언니, 2년 동안 언니는 투병생활을 했고, 동생은 병원과 집, 병원과 집을 2년 동안 다니며 언니를 돌 봐 왔습니다. 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슬픔을 표현할 길조차, 실컷 우는 것조차 하지 못해 울음을 가슴 가득 안고 살고 있는 동생의 삶이 우리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살아생전 뜻을 실천하기 위해 그렇게 언니의 유언을 집행하고 있는 동생… 두 자매의 삶이 우리의 가슴을 감동시키고, 우리 자신을 너무나 작아지게 만들었습니다. 안일하게 살고 있는 우리 삶을 겸허하게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30년동안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후원을 해 주신 분들을 돌아보니 흔히 말하는 부자들의 후원, 대기업들의 후원은 없었지만 힘겹게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후원, 매일매일 힘겨운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해 가고 계신 분들의 후원이 지난 30년을 더 강한 에너지로 작동시켜 주었고, 희망의 역사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우윤정 님과 그 언니의 소중하고 값진 뜻을 잘 이어받아 김복동 할머니의 희망이 재일조선학교 학생들과 그 공동체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앞으로 코로나19 문제가 해결되면 평화의우리집에서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한 식구’로 식사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